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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독일식 통일을 위한 국민의 자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14 조회수 1815
글쓴이: 국립4.19민주묘지관리소장 심재용 / / 2015년은 한국이 광복 70년을 맞은 뜻 깊은 해다. 또한 분단 70년을 조기에 마감하기 위해 조상들의 수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되새겨 보자. 이 나라의 20세기는 참담했습니다. ‘나라 잃고 반세기, 국토 동강나고 반세기’로 집약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아시아 대표국가인 중국, 조선, 일본, 근대화의 성패는 유럽에서 건너온 이양선(異樣船)에 대한 대처 능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청나라는 1840년 아편전쟁으로 힘없이 무너졌고, 조선은 1866년 대동강으로 거슬러 올라온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화공(火攻)하는 양이보국(서양 오랑캐를 몰아내고 나라를 보존한다는 쇄국론)의 잘못된 정책으로 나라를 잃었다. 고종 초기 영국인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가 쓴 《조선과 그 이웃나라》기록을 보면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에는 길바닥에 시체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굶어서 죽은 아사자들 이었습니다. 한 왕조가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워 굶어서 죽는 비극을 해마다 되풀이하면서 조선왕조가 5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존속했다는 것은 세종대왕 같은 성군과 참 선비들의 기개와 의리가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조선은 세계의 흐름에 눈뜨지 못했기에 망국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인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달은 바가 있어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였어도 큰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자랑할게 아니라, 그래도 당나라에 가서 앞선 선진문물을 배우고 오는 것이 옳다고 교육했어야 했다. 일본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메이지 유신에 성공함으로써 세계의 열강으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냉혹한 일제 치하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서울의 우당 이회영 일가, 강화도와 진천의 양명학자들, 경상도 안동의 이상룡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내가 죽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국가가 선비를 기른지 500년에 국가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어서야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하며 사약을 마신 매천 황헌 같은 선비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일본의 항복으로 인한 갑작스런 해방은 2차대전 패전국가의 책임을 물어 일본의 허리를 가르는 것이 합당함에도 억울하게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이후 북한의 남침에 의하여 수십만 명의 인명 피해와 국토가 초토화 되었습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UN군의 참전으로 휴전상태에 있다. 한국은 2차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에서, 그리고 미국이 파병했거나 경제지원을 한 100여 나라중에서 미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제대로 성공시킨,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유일한 국가로 성장했다. 오늘날 북한이 연평도 도발, 핵개발 등 무력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국가안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안보(Security)의 어원은 라틴어 Securitas로 Se(벗어나다)와 Curitas(불안, 근심, 걱정, 위협, 공포)의 합성어로 국가안보는 대?내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으로서 국가의 생존과 발전의 필수요소이다. 휴전협정 이후 한반도에서 북한의 전쟁재발을 억제하기 위하여 미국과 남한이 맺은 한미동맹의 중요한 역할을 살펴보면 첫째, 6.25전쟁시 공산주의에 맞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였고, 둘째,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 기둥 역할을 수행하여 북한의 대남도발 및 전쟁억제력으로 작용하였고, 셋째, 외국자본투자 환경을 보장하고, 군사비를 절약하여 경제발전과 복지에 투자가 가능케 하였으며, 한국군의 군복무 단축이 가능케 해 젊은 경제 인력 확보기회 제공 등으로 한강 기적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하였다. 통일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미국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강대국의 적극적인 지원 및 동의를 받아야 하고, 북한에 비해 월등한 경제력 마련, 통일을 향한 열망으로 하나된 단결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분단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국가 통치자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유언 “자신의 시신을 화장한 뒤 동해 바다에 묻어주면 바다를 지키는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호국?애민정신을 가져야 하겠다. 그리고 국민들은 통일기반 조성을 위하여 아끼고 절약하는 검소한 생활을 습관화 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 국민들의 해이한 정신자세는 한국일보 논설위원이었던 김성우 선생의 칼럼을 읽어보면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어느 나라인줄 아는가,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처럼 흥청망청인 나라가 세상에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이 잘사는 나라의 4분의1 밖에 안되는 우리나라의 씀씀이는 단연 세계1위다. 낭비와 과소비와 사치의 천국이다. 소비지출이 소득을 앞지르는 가계부채로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잘도 놀고 잘도 쓴다. 이런 나라에 미래가 있을 것인가” 우리 모두 참담한 현실을 인정하고 대오각성 할 필요가 있다. 100년 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조선을 가리켜 ‘자신을 위해 일격도 가하지 못할 나라’라며 일본과 카스라테프트 밀약을 맺어 조선을 포기했다지만 우리는 1세기 후 지금에도 과연 ‘일격’을 가할 독자적 힘을 갖추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월남이 패망한지 40여년이 흘렸다. 월남이 패망한 이유는 국가지도자들이 전쟁에 대한 목표도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국가적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6.25전쟁시 미 제8군사령관을 역임하고 주월 미국 대사관을 지냈던 테일러 대장은 “월남에 한국의 이승만 같은 지도자가 있었더라면 월남은 패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밝혔다. 우방국 군대가 그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착각하면 월남과 같은 비극을 밟게 된다는 것을 교훈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하겠습니다. 한반도 정세가 주변 4강에 휘둘렸던 것처럼 예멘 역시 미국?사우디?이란 등 강국들의 세력 다툼 무대였다는 것도 우리와 유사하다. 무엇보다도 ‘통일이 이뤄지면 정치?경제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안정되고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이상주의가 공통점이었다. 예멘은 현재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가 활개치는 시리아?이라크 등과 함께 한국 정부가 지정한 여행 금지 국가다. 차라리 분단 시절이 더 나았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그래서 통일 이후 예멘이 걸어온 길은 우리가 롤 모델로 생각하는 독일과 또 다른 차원의 교과서가 될 수 있다. 현실보다 이상론에 치우쳐 성급하게 진행하는 통일은 대박이 아닌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반도의 남쪽마저 이념과 정파, 지역 등으로 분열돼 온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독일의 찬란한 성공담 못지않게 예멘의 처절한 실패담을 통일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독일식 통일을 할것인가? 예멘식 통일을 할것인가? 그것은 국민 각자가 타고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고자 노력할때 성공적인 통일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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